조선왕조 실록

2019. 5. 8. 22:47역사

2001.8 

조선왕조 실록 요점정리

고조선건국 : 기원전 2333년-기원전108년 고조선 멸망

신 라 건 국 : B.C 57년 박혁거세-935년 경순왕이 스스로 왕건에 투항. 56대 992년.

고   구   려 : B.C 37년-668년.  주몽「동명성왕」이 졸본부여 에서 즉위.- 28대 705년.

               「신라 문무왕 때 라.당 연합군에 의해」멸망. 666년 연개소문이 죽고 그의

                 세 아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나라의 형편이기울기 시작했다.

                 668년[28대 보장 왕]. 당나라 군대 50만 신라 군대27만이 공격하여 멸망함.

백        제 : B.C 18년.-660년.  31대 678년.「온조왕 이 건국」-고구려 주몽의 셋째 아들.

                백제 의자왕 20년. 신라의 김유신 등이 계백장군 등을 물리치고 완산주 정복...

가   락  국 : 42년-532년 신라에 합병

대   가  야 : 42-562년

발        해 : 698-926년 대조영이 건국 926년 멸망. 15대 인선 왕 때 거란의 침입으로 멸망.

후   백  제 : 892년-936년. 견훤이 완산주에 도읍을 정함.                     「궁예-857년-918년」.

후  고구려 : 901년-918년. 궁에가 904년 국호를 마진 도읍을 철원으로    「견훤-867년-936년」.

고 려 건국 : 918년-1392년. 왕건이 건국 1392년 공양왕 때 멸망.           「왕건 877년-943년」.

후삼국 통일 : 936년.

조       선 : 1392년-1910년. 이성계 건국. 27대 순종 때 한일 합방으로

 

 

조선 역대 왕들의 집권기간 및 연도

       집권기간           즉위          사망                 집권기간             즉위          사망
제1대왕 태조 6년 「1392-1398」 57세-74세.      제16대왕 인조 26년「1623-1649.  29세-55세.
제2대왕 정종 2년 「1398-1400」 41세-63세.      제17대왕 효종 10년「1649-1659   31세-41세.
제3대왕 태종 18년「1400-1418」 33세-51세.     제18대왕 현종 15년「1659-1674」 19세-34세.
제4대왕 세종 32년「1418-1450」 21세-54세.     제19대왕 숙종 46년「1674-1720」 14세-60세.
제5대왕 문종 2년 「1450-1452」 36세-38세.     제20대왕 경종 4년 「1720-1724   32세-37세.
제6대왕 단종 3년 「1452-1455」 12세-17세.     제21대왕 영조 52년「1724-1776   31세-83세.
제7대왕 세조 13년「1455-1468」 39세-52세.    제22대왕 정조 24년「1776-1800」 25세-49세.
제8대왕 예종 1년 「1468-1469」 19세-20세.     제23대왕 순조 34년「1800-1834   12세-45세.
제9대왕 성종 25년「1469-1494」 12세-38세.     제24대왕 헌종 15년「1834-1849」 8세-23세.
제10대왕연산 12년「1494-1506」 19세-31세.    제25대왕 철종 14년「1849-1863」 19세-33세.
제11대왕중종 38년「1506-1544」 19세-57세.    제26대왕 고종 44년「1863-1907」 12세-56세.
제12대왕인종 1년 「1544-1545」 30세-31세.     제27대왕 순종 3년「1907-1926」   33세-53세.
제13대왕명종 22년「1545-1567」 12세-44세.
제14대왕선조 41년「1567-1608」 16세-59세.
제15대왕광해 15년「1608-1623」 34세-67세. 

 

 

조선의 건국과 근세 사회의 성립

위화도 회군

공민왕의 개혁실패와 사회의 모순은 더욱 심화되었고 권문세족의 전횡으로 정치 기강의 문란과 백성들의 생활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북으로부터 홍건적, 남으로는 왜구가 침입하여 고려는 내외의 우환에 시달렸다.

홍건적은 원 말기 한족 농민 반란군으로 각처에 독립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중의 일부가 고려에 침입해 왔다.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경까지는 함락되기는 했지만 이방실, 이승경, 정세운, 이성계 등의 활약으로 큰 피해 없이 물리칠 수 있었다.

더욱 큰 피해를 입힌 것은 왜구의 침입이었다. 그들은 조운제도를 무력화 시키는 등 전국의 해안 지방을 침탈해 황폐하게 했다. 점차 고려의 토벌 작전이 효과를 거두고 창왕 때 박위가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을 정벌하면서 다소 완화되는 양상을 보였지만 조선초까지도 계속되었다. 특히 왜구를 토벌하는 장수들은 국왕보다도 더 많은 국민의 신망을 받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홍산 전투의 최영과 황산전투의 이성계는 왜구의 토벌 과정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대표적 인물이었다.

공민왕과 우왕 때에는 최영과 이성계가 대표적 권문세족이었던 이인임 일파를 축출할 때까지는 같은 길을 걸었으나 이후 개혁의 방향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최영은 이성계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명문출신인 데다가 그 자신이 우왕의 장인이었으므로 당시의 집권층인 권문세족을 대표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최영은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 는 격언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사회적 위치는 우왕의 장인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개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성계는 본래 영흥출신의 변방 무사였으나 공민왕의 쌍성총관부 탈환 시 내부에서 호응하는 공을 세워 처음 중앙 정계에 진출한 이후 원의 침입 격퇴, 요동공략, 홍건적과 왜구의 격퇴 과정을 거치면서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 자신이 신흥 무인이라는 점에서 출신 성분이 비슷한 신진 사대부들과 결합하여 개혁세력을 대표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불안한 동거 상태를 유지하던 최영과 이성계의 정면 충돌은 명의 철령위 설치 통보에 대한 대응책 차이가 계기가 되었다. 원을 대신해 중국을 차지한 명은 원의 영토였던 철령 이북의 땅 즉 옛 쌍성총관부 관할 지역이 원을 대신하는 명의 영토라는 논리로 이 지역을 명의 직속령으로 삼을 것과 그 통치를 위한 관청인 철령위를 설치할 것을 통보해오자 친원적 성격의 권문세족을 대표하던 최영은 이를 불쾌히 여겨 요동정벌을 추진한다.

그러나 당시 신진사대부는 명과의 친선을 도모하는 외교 노선을 채택하고 있었다.

신진사대부의 사상기반인 성리학에서의 명분론에 따라 한족 국가인 명의 정통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 현실적으로 권문세족과 연결된 원을 배척해야 한다는 점 등이 친명 외교를 표방했던 것이다. 이에 이성계는 이른바 4대불가론 즉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이 좋지 않고 둘째 더운 여름철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좋지 않으며 셋째 왜구가 이 틈을 노려 쳐들어 올 염려가 있고 넷째 장마가 들면 활이 풀리고 질병이 퍼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그러나 아직은 권문세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결국 최영의 주장대로 요동정벌을 단행하게 되었다. 최영은 최고 지휘관인 8도 도통사로 후방에 남고 이성계가 야전 사령관격인 우군도통사로 출병했다. 하지만 진군을 늦추던 이성계는 압록강 하류의 섬인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 등을 제거함으로써 고려의 정치적. 군사적 실권을 장악했다.

 

전제개혁과 과전법의 실시

위화도 회군으로 권문세족의 정치적 권력을 빼앗은 신진 사대부가 권문세족의 경제적 실권인 토지를 빼앗아 버린 사건이 전제개혁이고, 그 과정에서 새로 실시한 토지 제도의 명칭이 과전법이다. 이로서 권문세족은 모든 실권을 박탈당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토지제도는 신라의 녹읍과 관료전, 고려의 전시과가 등장했으나 고려의 전시과 제도는 무신정변 이후 무너져 내렸고 권문세족의 집권시기에 이르러서는 국가 재정을 좀먹고 백성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고려의 토지제도는 태조 즉위시에는 논공행상에 따라 역분전을 지급하였고 문벌귀족시대에는 전시과를 무신집권기에는 녹봉만을 지급하다가 몽고의 침입으로 녹봉지급이 어려워지자 녹과전을 지급했다. 이후 권문세족 집권기에는 권문세족이 대농장을 소유하게 되자 공양왕 때 과전법을 실시하여 신진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신진사대부들은 국가 재정의 안정과 농민 생활의 보장을 명분으로 새로운 토지제도를 실시했으나 실제 속셈은 신진사대부 일파가 경제적 실권을 장악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전국의 토지를 조사해 새로운 토지대장인 양안을 작성하고 토지의 수조권을 재분배함으로써  신진관료들의 생활 기반을 보장했다. 또 불법으로 겸병된 권문세족의 토지들은 환원해 농민들의 경작권을 보장하고 조세율을 조정하는 등 농민 생활을 보호하려했다.

결국 전제개혁 곧 과전법의 실시는 신진사대부의 경제적 실권 장악을 최우선 목표로 해 농민 생활의 보호와 그를 기반으로 한 국가 재정의 확보 등 다목적용 개혁이었던 것이다.

 

온건파 사대부 제거와 조선의 건국

위화도 회군으로 신흥 무인 세력인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 세력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실권을 장악한 이후 개혁의 기회를 맞이하지만, 이들 신진사대부 세력은 개혁의 방법론상의 차이로 분열했다.

이들 개혁론자들은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하고 새로운 왕조를 주창해야 한다는 역성혁명론자들과 고려 왕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고려를 개혁해야 한다는 고려개혁론자로 나뉘어진다.

 

이색. 정몽주 등 정치 안정을 바라는 대다수 사대부들을 포함한 온건 개혁파들은 비리세력 제거와 대토지 사유는 정리하고자 하였으나, 정도전. 권근 등 급진 개혁파들은 권세가들에 의한 토지 소유를 축소하는 대대적 개혁을 추구했다.

 

정도전은 통치자가 민심을 잃었을 때 물리력으로 왕조를 교체할 수 있다는 맹자의 역성혁명을 바탕으로 이미 국운이 기울어가던 고려왕조를 폐하고 성리학 사상을 통치 이념으로 한 새로운 왕조를 꿈꾸었다. 비록 소수였지만 급진 개혁파가 권문세족과 온건 개혁파의 저항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국민적 영웅이었던 이성계와 손을 잡음으로써 농민 군사들의 지원을 받았다. 즉 급진 개혁파와 이성계 세력이 결속하여 혁명파를 이루었다.

 

위화도 회군 직후에 옹립한 창왕을 다시 몰아내고 공양왕을 세우면서 혁명파는 온건 개혁파의 세력을 꺾고 정치적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른바 폐가입진 즉 거짓을 없애고 참을 세운다는 명분을 내세워 우왕이 공민왕의 후손이 아니라 신돈의 자식이므로 그 아들인 창왕 역시 왕의 자격이 없다고 억지를 부려 축출했다.

정몽주가 고려를 향한 충절의 피를 뿌린 것을 마지막으로 온건파 사대부 세력은 제거되었고 이후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성계는 공양왕으로부터 선양형식 즉 자손이 아닌 유덕한 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형식으로 왕위를 이어받아 역성혁명에 성공했다.

조선 건국초기인 15세기에는 혁명파인 정도전 권근 등이 관학파로 분류되고 세조이후 이들은 훈구파로 불리게 된다.

15세기의 관학파와 16세기에 권력을 잡는 사림파의 차이점을 대표적으로 이해하기 쉬운점은 관학파는 이방원의 하여가파와 사림파는 정몽주의 단심가파로 구별하면 거의 맞아떨어진다. 관학파는 이방원의 시인 이런들 어떻리 저런들 어떻리..... 즉 조선 초기에 이들 관학파인 정도전 권근 등은  타 사상도 포용했으며 사장을 중시했고 부국강병과 중앙집권과 왕권강화를 추구했고 현실적이고 융통성이 있었다.

반면에 사림파들은 정몽주의 단심가파로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 즉 온건파인 정몽주 길재 등은 오르지 절대적 성리학 신봉자들이며 타 사상을 배격하고 왕도정치와 향촌자치. 학술. 언론 경학 등을 중시했으며 관념적이고 원칙주의자였다.

 

 

※ 고려왕실은 34대 474년으로 막을 내림

야사에 이성계 일파는 공양왕을 내친 후 왕씨 일가를 모조리 멸족시킬 계획을 세우고 전국에 방문을 붙여 한 곳에 모아 수장시킨 것으로 전해짐. (방문의 내용: 왕씨 들에게 섬을 하나 내줄 테니 강화 해안에 모두 모이라는 것.)기왕에 불안에 떨고 있던 왕씨 들은 이러한 약속을 믿고 강화도 행 배를 탔다가 모두 수장됨. 이성계 일파의 모략임을 간파한 일부 왕씨 들은 배에 오르지 않았으며 ( 全, 田, 玉, 龍,)씨 등으로 속여 목숨을 부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봉준 - 새야 새야 파랑새야 "SBS 녹두꽃"  (0) 2019.05.12
조선시대 명문 명벌  (0) 2019.05.09
조선왕조 21대~27대  (0) 2019.05.09
조선왕조 11대~20대  (0) 2019.05.09
조선왕조 1대~10대  (0) 2019.05.08